“In every sculpture I carve, there is a little part of me and the Korean culture … My works represent a collaboration between Australia and Korea.”
Jina Lee, Sculptor
“제가 작업하는 모든 조각에는 제 자신과 한국 문화가 녹아들어 있어요… 저의 작품은 일종의 호주와 한국의 콜라보레이션이라 할 수 있죠.”
이진아(Jina Lee), 조각가
Assoc. Prof. RUTH BARRACLOUGH
루스 배러클러프
Associate Professor Ruth Barraclough first visited South Korea as a 17-year-old undergraduate on an exchange program organised by the Australian Student Christian Movement and the Korean Student Christian Federation. That visit that was to change the course of her life.
“Just two years earlier, in 1987, the democracy movement in South Korea brought an end to a near 30-year military regime. When I visited in the northern summer of 1989, the atmosphere was electric with energy and a sense of historical moment. I travelled to industrial districts and met young female workers who had helped generate Korea’s record industrial development. I visited university campuses and talked to students who had risked prison to critique the military dictatorship. I took the bus to Cholla Province and met farmers and former political prisoners in this opposition stronghold.
That visit made me decide that what I really wanted to study could only be found in Korea. A month after completing my BA at the University of Queensland, I returned to Seoul and studied Korean language at Yonsei University and Ewha Woman’s University.
루스 배러클러프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부교수는 17살 대학생 시절 호주학생기독교운동(Australian Student Christian Movement)과 한국학생기독교연맹(Korean Student Christian Federation) 간 교류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그리고 이 한국 방문으로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제가 한국을 방문하기 2년 전인 1987년, 한국에서는 민주화운동으로 30년간의 군부독재가 막을 내렸습니다. 1989년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분위기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아 한껏 고조되어 있었어요. 그때 공단을 방문해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기록적인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자 동시에 작가, 소설가, 시인을 꿈꾸는 소녀들이었어요. 대학 교정을 방문했을 때는 감옥에 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군부독재를 비판하던 대학생들을 만났어요. 버스를 타고 전라도에 가서 농부들, 그리고 옥살이를 했던 야당의 텃밭인 전라도 출신 전직 정치인들도 만났죠.
그 경험을 계기로 한국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퀸즐랜드대학교(University of Queensland)에서 학사를 마친 후 서울로 돌아와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After winning a scholarship to Th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ANU), I researched and wrote my PhD in Korean literary history. That thesis became the 2012 book, Factory Girl Literature, about the factory girls who generated Korea’s industrial revolution, while at the same time cherishing ambitions to be writers, novelists and poets. In 2017, Factory Girl Literature was translated and published in Korea where it spent 20 weeks on the history bestseller list and received numerous awards.”
Having taught at the University of Sydney and the University of Minnesota, Ruth is now Head of the Department of Pacific and Asian History at ANU and Director of the Korea Institute.
“Teaching the smart and dedicated students that arrive every year bursting to learn more about Korea, and encouraging them to study on exchange in Korea, is truly meaningful.”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은 후 한국문학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박사논문을 기반으로 한국 산업혁명의 주역인 여공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공문학(Factory Girl Literature)’을 2012년 출간했고, 이 책은 2017년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어요. 출간 후 한국에서 20주 연속 역사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다양한 상을 수상했습니다.”
시드니대학교(University of Sydney)와 미네소타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배러클러프 교수는 현재 호주국립대학교 문학역사언어학과 부교수이자 한국연구소(Korea Institute)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배움의 열정으로 매년 입학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일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Teaching the smart and dedicated students … bursting to learn more about Korea, and encouraging them to study … in Korea, is truly meaningful.”
“한국에 대한 배움의 열정으로 매년 입학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일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Dr. SIMON BARKER
사이먼 바커
Dr Simon Barker is a lecturer in Drum Set and Rhythm Awareness at the Sydney Conservatorium of Music. In addition to numerous solo performances and recordings, he co-leads several internationally recognised collaborative ensembles including Trace Sphere, Chiri, Showa 44, and Band of Five Names.
Simon’s long association with Korea began in 1993, when he was on tour with the Mark Isaacs trio.
“After our performance in the Chosen Hotel, Seoul, we met a group of Australian jazz musicians who were on a six-month stint performing at the hotel, and subsequently I was invited to fill in for the drummer for two weeks. This was an incredible opportunity for me, playing and making friends with a number of Korean jazz musicians who were also filling in.
A few months later, I was invited to take the Matt McMahon trio on a six-month residency at the venue. During our stint, we performed with many different Korean musicians, and once the contract ended, I travelled back to Korea several times a year to play with Korean jazz groups or in concerts with Australian bands. It was wonderful to develop deep and ongoing friendships with a number of Korean jazz musicians, many of whom I still perform with, such as pianist Lim Mi Jeong.
사이먼 바커 박사는 시드니음악대학교(Sydney Conservatorium of Music)에서 드럼과 리듬학(Drum Set and Rhythm Awareness)을 가르치고 있다. 수많은 단독 공연과 음반 작업을 진행할 뿐만 아니라 트레이스 스피어(Trace Sphere), 치리(Chiri), 쇼와44(Showa 44), 밴드오브파이브네임즈(Band of Five Names)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여러 협연 앙상블을 이끌고 있다.
사이먼과 한국의 인연은 그가 마크 아이잭스(Mark Isaacs) 트리오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 위치한 조선호텔에서 공연을 마치고 당시 조선호텔에서 6개월 동안 공연을 하고 있던 호주 재즈 뮤지션들을 만났어요. 이 만남을 인연으로 저는 2주 동안 이들의 공연에서 드럼을 맡게 되었죠. 공연에 함께한 여러 한국 재즈 뮤지션들과 연주도 하고 친분도 쌓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몇 달 후 맷 맥마흔(Matt McMahon) 트리오와 함께 6개월 동안 전속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당시 많은 한국 뮤지션들과 협연을 했고, 전속 계약이 종료된 후에는 1년에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재즈 그룹 및 호주 밴드와 함께 공연했어요. 이 경험을 통해 여러 한국 재즈 뮤지션들과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피아니스트 임미정 씨와 같은 한국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하고 있습니다.
One performance stands out as a life-changing experience for me: playing with the extraordinary Korean drummer/improvisor Kim Dae Hwan in a collaborative concert with Band of Five Names in 1999. This concert was developed in association with the Australia-Korea Foundation and completely changed my musical direction from then on.
Over the next seven or eight years I performed in numerous collaborations with Korean musicians and many other performance opportunities, made possible with the support of the Australia-Korea Foundation. Later I became fascinated with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spent many years studying and collaborating with Korean traditional musicians.”
“It was wonderful to develop deep and ongoing friendships with a number of Korean jazz musicians, many of whom I still perform with”
특히 제 인생을 바꾸어 놓은 공연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밴드오브파이브네임즈와의 협연 콘서트에서 한국의 세계적인 드러머이자 즉흥 연주가인 김대환 씨와 함께한 공연이었어요. 호한재단(Australia-Korea Foundation)과 공동으로 기획된 이 콘서트를 통해 이후 저의 음악적 방향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후 7~8년 동안 많은 한국 뮤지션들과의 협연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회를 통해 공연을 했어요. 이는 호한재단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또한 한국 전통 음악에도 매료되어 여러 해 동안 공부하고 한국 전통 음악가들과 협연도 진행했습니다.”
“여러 한국 재즈 뮤지션들과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한국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하고 있습니다.”
“It was wonderful to develop deep and ongoing friendships with a number of Korean jazz musicians, many of whom I still perform with”
“여러 한국 재즈 뮤지션들과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한국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하고 있습니다.”
JINA LEE
이진아
Visitors to Sculpture by the Sea, an annual outdoor exhibition at Cottesloe Beach in Western Australia, may have come across a giant drawstring pouch made of stone. According to Korean tradition, this pouch — known as a bokjumeoni — brings good fortune to the holder. The sculpture was created by Jina Lee, a Korean sculptor who immigrated to Australia in 2013 at the age of 29.
“I use Australian stone to create sculptures inspired by Korean culture. In that way, my works represent a collaboration between Australia and Korea.
I began my journey as a sculptor in 1999 after being accepted into the Kaywon School of Arts in South Korea. After graduating from art school, I studied a Bachelor in Traditional Korean Culture and Arts at the Korean National University of Cultural Heritage. It was during this time that I first learned about stone sculpting using traditional Korean techniques of carving. This sparked a flame in me, and I went on to complete a Masters of Fine Art majoring in Sculpture at Kookmin University. I didn’t recognise it initially, but the time spent studying traditional Korean art and culture planted a seed within me that would later bloom.
서호주의 코테슬로 비치(Cottesloe Beach)에서 매년 열리는 야외 전시회인 ‘바다 조각전(Sculpture by the Sea)’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돌로 만들어진, 끈으로 조이는 거대한 주머니를 마주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주머니는 ‘복주머니’ 라고 하며, 한국에는 이 주머니가 복을 불러온다 하여 이것을 매고 다니던 전통이 있다. 이 조각은 한국 조각가인 이진아 씨의 작품으로, 이 씨는 29세였던 2013년 호주로 이민을 갔다.
“저는 한국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호주의 돌을 가지고 조각을 합니다. 따라서 제 작품은 일종의 호주와 한국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한국의 계원예술고등학교 입학한 후 1999년 조각가로서의 여정을 시작했어요. 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한국문화예술 학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즈음 한국의 전통적인 조각 기법을 사용한 석조각에 대해 처음 배웠어요. 이것이 제 마음 속 열정을 불러일으켜 국민대학교에서 조각 전공 미술학 석사학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전통 한국 예술과 문화를 공부했던 시간들이 제 안에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은 나중에 꽃을 피우게 되었어요.
In every sculpture I carve, there is a little part of me and the Korean culture and way of life that raised me. While exhibiting at Sculpture by the Sea, I loved explaining to people the meaning of each of my pieces, its relation to Korean culture and its importance to me. As well as the bokjumeoni, I exhibited a giant gache — a traditional Korean wig from the 17th century — also made out of Australian stone.
I believe that art is one of the best ways for us to connect with one another. It’s incredibly moving for me to see the impact my sculptures have on members of the public, especially when it helps them learn something new about Korean culture.”
제가 작업하는 모든 조각에는 제 자신, 한국 문화, 제가 자라난 삶의 방식이 녹아들어 있어요. 바다 조각전에 참가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제 작품의 의미와 한국 문화와의 관련성, 그리고 그 작품이 저에게 가지는 중요성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이 참 좋았어요. 복주머니 외에도 거대한 ‘가체’, 즉 17세기 한국 전통 가발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도 호주의 돌로 만든 것이었죠.
저는 예술이야말로 한국과 호주를 서로 연결해주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어요. 제 조각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너무나 감격스러워요. 특히 제 작품이 한국 문화를 새롭게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답니다.”
“In every sculpture I carve, there is a little part of me and the Korean culture… My works represent a collaboration between Australia and Korea.”
“제가 작업하는 모든 조각에는 제 자신과 한국 문화가 녹아들어 있어요… 저의 작품은 일종의 호주와 한국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죠.”
ROSS GREGORY
로스 그레고리
Entrepreneur, investor and former banking, finance and maritime lawyer, Ross Gregory has played a valuable role in supporting the development of strategic partnerships between Australian and Korean businesses. For many years he worked in investment banking with the Macquarie Group in Seoul. He has established a number of businesses from scratch and created new trends in the Korean market across finance, fitness, food and beverages, some employing several hundred local staff.
전직 은행원이자 기업가, 투자가, 금융 및 해양 전문 변호사인 로스 그레고리는 호주와 한국 기업 간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서울에 주재한 맥쿼리 그룹(Macquarie Group)의 투자은행 부문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며, 한국의 금융, 피트니스, 식음료 시장에서 많은 기업의 설립을 담당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 당시 그가 설립한 기업 중 일부는 현재 수백 명의 한국인 현지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My first encounter with Korea was during my university days, when I travelled there in the depth of winter. I was fascinated by Korea’s rich culture and history, and by the resilience of its people in the face of political and economic hardship. Keen to learn more, I returned to study Korean at Yonsei University. I think a foreigner can better appreciate cross-cultural and business relations by understanding the local language. In all the positions I have occupied in Korea, I have tried to immerse myself in local business practices, communicating exclusively in Korean, while hopefully bringing some international insight into strategic thinking and decision-making.
Over the years, including at Macquarie, I have actively sought to foster the Australia-Korea relationship. My current role involves assisting Australian owners of battery and critical minerals resources and Korean cell and electrode manufacturers to forge partnerships, to establish bilateral supply chains and develop their resources. Not only are these partnerships crucial as the world heads rapidly towards decarbonisation and electrification, but they also serve to deepen the relationship between our two countries.
Battery and rare earth minerals offer huge opportunities for partnering between Australian miners and Korean manufacturers. The growth of electric vehicles over the next decade will be astronomical, and demand will surge for the various primary cathode and anode minerals and metals to build lithium-ion battery cells and permanent magnets. Looking forward, Australia with its deep resource sector and Korea with its sophisticated manufacturing sector are perfectly suited for win-win strategic partnership building across a range of sectors.”
“대학교 시절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는데 한겨울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의 풍요로운 문화와 역사에 매료되었고, 정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보여준 회복력에 감동을 받았어요. 한국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서 다시 돌아가 연세대학교 한국어 과정에 등록했어요. 현지 언어를 알아야 서로 다른 문화 및 기업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맡았던 모든 역할에서 저는 항상 현지 기업 관행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한국어로만 의사소통하며 전략적 사고와 의사결정에 글로벌 통찰력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맥쿼리를 포함한 다양한 기업에서 일하면서 호주와 한국의 관계 증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회를 모색했습니다. 현재는 호주의 배터리 및 주요 광물 자원 소유 기업과 한국의 전지 및 전극 제조사 간 공급망 구축과 자원 개발 관련 파트너십 수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빠르게 탈탄소와 전기화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이 같은 파트너십은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양국 간 관계 심화에 있어서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배터리와 희토류 광물은 호주 광산 기업과 한국의 제조사들에 엄청난 파트너십 기회를 제공합니다. 전기자동차는 앞으로 10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며, 이는 리튬이온 배터리 전지와 영구 자석 생산을 위한 다양한 양극재 및 음극재, 그리고 금속 수요의 증가로 이어질 것입니다. 향후 호주의 풍부한 자원과 한국의 선진 제조업은 다양한 부문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서로가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In all the positions I have occupied in Korea, I have tried to immerse myself in local business practices, communicating exclusively in Korean.”
“한국에서 맡았던 모든 역할에서 저는 항상 현지 기업 관행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한국어로만 의사소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Prof. KIM WOO SANG
김우상
International politics expert Professor Kim Woo Sang has played a key role in negotiations leading to several major bilateral trade and security agreements between Australia and Korea. He was the Korean Ambassador to Australia from 2008 to 2011, and President of the Korea Foundation from 2012 to 2013.
He is currently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Studies at Yonsei University.
“I was always interested in politics — probably due to my father’s influence. He told me I should become a lawyer or a statesman! Until fairly recently, I considered myself lucky to be working in the field of international politics, because it meant I was in a position to contribute to my society — for example by providing advice to political leaders and policy-makers. Now I’m wondering whether I should enter politics myself!
I often used to tell my students that Korea needs to learn to become a middle-power country, and that there is a valuable role that we can play at a global level. When I was given the opportunity to take up an ambassadorial role, I chose to go to Australia. As an important middle power, I felt that Australia had a lot to offer that could be relevant to Korea. At that time the relationship between our countries was mainly economic; it seemed a very good opportunity for me to play a key role in developing that relationship.”
국제정치학 전문가인 김우상 교수는 호주와 한국의 주요 양자 무역 및 안보 협정 협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2008~2011년 주호주 한국 대사를 역임했고, 2012~2013년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항상 정치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마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거예요.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변호사나 정치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어요. 꽤 최근까지도 저는 국제 정치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등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죠. 지금은 ‘정계에 직접 입문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한답니다.
저는 한국이 중견국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세계 무대에서 한국이 담당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대사직을 수행할 기회가 왔을 때, 호주로 가기로 결심했어요. 호주는 주요 중견국으로서 한국이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당시 양국 관계는 주로 경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이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데 있어 제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Building on discussions over the last ten years between Professor Kim and Australian and Korean leaders on elevating the Australia-Korea bilateral relationship, a 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has been established between the two countries.
“Our region currently faces major challenges, including managing our relations with the super powers, and our ability as middle-power countries to address these challenges requires us to work closely together.”
Professor Kim has also served as a member of the Steering Committee of the Council for Security Cooperation in the Asia-Pacific and the Advisory Committee of the National Security Council.
지난 10년 동안 김 교수와 호주 및 한국 지도자들은 양국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양국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였다.
“한국과 호주는 현재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적절히 유지하는 등 중요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양국이 중견국으로서 이러한 과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긴밀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김 교수는 아시아태평양안보협력회의 운영위원회 및 국가안전보장회의 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Our region currently faces major challenges … and our ability as middle-power countries to address these challenges requires us to work closely together.”
“한국과 호주는 현재 중요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양국이 중견국으로서 이러한 과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긴밀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VINCE DAMON
빈스 데이먼
Vince Damon is in the unusual position of being both Korean and a serving member of the Australian Defence Force. Growing up in Seoul, Vince’s knowledge of Australia was limited to what he had learned at school and from the 2000 Sydney Olympics. He first visited Australia in 2005 when he was in his mid-twenties, and he was so taken with the beautiful natural landscape, the relaxed lifestyle and the cultural diversity that he decided to stay.
Vince joined the Australian Army, where his language skills were put to valuable use as an interpreter. Under Operation Linesmen he was deployed to the Korean Peninsula, along with a small number of military personnel, where his linguistic skills enabled him to play a unique and valuable role as the mission’s interpreter. The mission’s purpose was to oversee approvals for access into the demilitarised zone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빈스 데이먼은 흔치 않은 한국계 호주 국방부 소속 군인이다. 서울에서 자라면서 호주에 대한 정보는 학교에서 배운 것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통해 본 것이 전부였다. 20대 중반이던 2005년 호주를 처음으로 방문한 후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 문화적 다양성에 매료되어 호주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빈스는 호주군에 입대하여 한국어 실력을 기반으로 통역관으로 활약했다. ‘라인즈맨 작전(Operation Linesmen, 역자 주: DMZ 화살머리고지에서 진행되는 지뢰제거, 유해발굴 태스크포스에 참여 중인 호주 파견대)’에서 소수의 군인들과 함께 한반도로 파견되어 통역관이라는 특별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라인즈맨 작전의 주 임무는 DMZ에서 남북한 군의 출입 허가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At that time I was an infantry soldier from the 6th Battalion, Royal Australian Regiment, and my role involved translating access approval documents from the ROK Army. Not only did I need to translate the words across two different alphabets, but it was just as important to convey the appropriate emphasis or inference to what was being communicated by both parties.
The chance to work in my country of birth was a once-in-a-lifetime opportunity, and I am proud to have been able to contribute to developing this connection between Australia and Korea. As the sole linguist on the team, I essentially became the bridge between our two countries during that mission.
Australia and Korea have been allies since the Korean War, and increasing interactions between our two countries, such as through Operation Linesmen, and the ongoing dynamics in the Asia-Pacific region, will see these ties strengthened even further.”
“저는 당시 호주 왕립 연대 제6대대(6th Battalion, Royal Australian Regiment) 보병이었는데, 한국 육군의 출입 허가 문서 번역을 담당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번역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동시에 적절한 강조나 추론을 정확히 전달해 양측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어요.
제가 태어난 모국에서 일하게 된 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였고, 호주와 한국의 관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자긍심을 느꼈어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작전 기간 동안 양국 간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호주와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로 동맹국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인즈맨 작전과 같은 기회를 통해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고 있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의 역학 관계도 지속되고 있지요. 따라서 양국 관계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s the sole linguist on the team, I essentially became the bridge between our two countries.”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작전 기간 동안 양국 간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